[만나러 갑니다] “파이를 키워 환자의 시간을 당기다” — 희귀질환 비즈니스 아키텍트, 지창덕 상무 (上)

Sookjin Lee
Chief Business Officer (CBO) | 생명과학 박사
정밀의료·유전체 분야에서 20년간 혁신을 이끌어온 비즈니스 전문가. 학술적 전문성과 시장 통찰력을 바탕으로 혁신 기술의 상업화와 가치 창출을 가속화합니다.
Key Highlights
- 개념의 전환: 제품 판매를 넘어 진단부터 치료까지 ‘환자 여정’을 설계하는 희귀질환 비즈니스 아키텍처.
- 판을 키운 협업: [제약사-진단사-유통사] 3자 협력을 통해 기존 파이를 나누는 대신 진단 시장 자체를 확대.
- 조기 진단이 만든 변화: AI 기반 스크리닝으로 15년간 유전자 변이를 찾지 못했던 환자의 치료 길을 개척.
희귀질환 환자의 삶을 바꾸는 최전선에는 의료진이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의 질환을 찾아내고 치료까지 연결하는 과정은 의사 한 사람의 힘만으로는 완성되기 어렵습니다. 진단 기술을 만드는 기업과 치료제를 공급하는 제약사까지, 다양한 영역의 에너지와 열정이 맞물릴 때 비로소 현장의 변화가 만들어집니다.
오늘 만난 지창덕 상무는 제약업계의 시각에서 희귀질환 진단과 치료의 판을 어떻게 확장해 왔는지 이야기합니다. 의료진과 제약사, 그리고 진단 기업이 어떻게 하나의 팀으로 움직여 환자의 시간을 당길 수 있었는지, 그 현장의 기록을 전합니다.

PART 1. 시작과 사람
Q. 15년 전이면 프라이머리 케어에서 한창 블록버스터 제품을 키우며 커리어의 정점을 달리시던 때잖아요. 왜 안정적인 길을 두고 희귀질환이라는 미개척지로 옮겨가셨나요?
지창덕 상무: 성과는 화려했고 전략적 경험도 많이 쌓았지만, 이상하게 마음 한구석엔 늘 채워지지 않는 공허함이 있었어요.
“내가 하는 이 일이 과연 누구를 위한 걸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을까?”
이 질문이 끊임없이 머릿속을 맴돌았죠. 그때 만난 게 희귀질환 영역이었습니다. 완전히 다른 접근법이었고, 환자의 삶에 진짜 눈에 보이는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죠. 그렇게 화려한 발자취와 안정을 뒤로하고 ‘의미’를 선택했습니다. 제 커리어 전체를 바꾼 순간이었죠. 제가 하는 일이 누군가의 인생에 커다란 이정표가 되는 걸 몇 번이고 경험하면서, 이 사명감은 흔들리지 않는 뿌리가 됐습니다.
Q. ‘희귀질환 약을 다룬다’는 건 일반적인 제약 영업과 무엇이 가장 다른가요? 스스로는 이 일을 어떻게 정의하시나요?
지창덕 상무: 단순히 제품을 포지셔닝하고 판매하는 일이 아니에요. 존재하지 않던 시스템을 바닥부터 세워가는 일에 가깝죠. 허가, 보험 급여, 진단, 치료, 관리에 이르는 환자 여정(Patient Journey) 전체를 의료진, 다양한 이해관계자들과 함께 설계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저는 제 일을 ‘희귀질환 아키텍처(Rare Disease Architecture)’라고 정의합니다.
할 수 있는(Able)’ 테두리 안에 머무는 게 아니라, 불가능했던 판을 ‘가능하게 만드는(Enable)’ 과정
이숙진 CBO: 완전 공감합니다. 같은 일을 하더라도 스스로 어떻게 포지셔닝 하고 의미를 부여하는지가 중요한 것 같습니다. 타인이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의하고 또 그에 맞추어 해가는 것이 가장 큰 힘인 것 같아요. 결국 모두가 “자신을 밸류업” 하는 세일즈맨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PART 2. LSD 유전자 스크리닝 — 판을 바꾸는 협업
Q. 쓰리빌리언과의 인연은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지창덕 상무: 2016년 한 학회장에서 금창원 대표님이 3billion의 비즈니스 콘셉트를 발표하시는 걸 우연히 봤어요. “정말 저렇게만 된다면 대단하겠다” 싶어 바로 인사를 건넸죠.
하지만 이 아이디어가 실제 비즈니스로 숙성되기까진 3년이라는 시간이 더 필요했습니다.
유전자 검사에 대한 인식을 바꾸고, 비용의 벽을 넘고, 운영에 대한 공감대를 모으기까지 수많은 설득을 거쳤죠. 그러다 아이러니하게도 코로나가 시작된 2020년, 그 격변기를 발판 삼아 [제약사 – AI 진단 스타트업(3billion) – 진단 유통사] 3사가 손을 맞잡는 협업 모델을 세상에 내놓을 수 있었습니다. 이 성공 케이스가 더 많은 환자의 진단으로 이어졌고, 시장의 진료 관행(Practice) 자체를 바꾸는 결과를 만들어냈습니다.
이숙진 CBO: 2016년 학회라면 정말 쓰리빌리언의 시작점을 마주하신 거네요. 그 때만 하더라도 “AI”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특히 의료 현장에서는 다들 “무슨 소리하는 거야?” 하고 의구심이 가득할 때였어요. 지금은 AI가 안들어가면 문제가 되는 세상이 되어버렸지만. 흐름을 보는 선구안이 있으셨네요.
Q. 당시 국내에서는 ‘증상 먼저, 유전자 검사는 확진용’이라는 인식이 확고했잖아요. ‘유전체 기반 LSD 스크리닝’이라는 낯선 접근을 어떻게 떠올리셨나요?
지창덕 상무: 파브리병을 예로 들면, 저희는 시장에 세 번째로 들어간 후발주자였습니다. 선두주자는 15년 이상의 헤리티지를 가진 표준 치료(SoC)로 버티고 있었고, 바이오시밀러와 경구용 치료제까지 가세해 그야말로 기울어진 운동장이었죠.
그때 찾은 답이 “본질로 돌아가자(Back to the origin)”였습니다. 정해진 파이 안에서 점유율 싸움만 하던 시선을 돌려, 미개척 영역인 ‘진단’을 바라본 거죠. “파이를 나누지 말고, 파이 자체를 키우자.” 더 많은 환자를 찾아내는 데 집중하자 시장과 과학의 요구가 정확히 맞아떨어졌고, 그걸 비즈니스로 풀었습니다.
더 많은 환자를 찾아내서 도움을 주자는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그러러면 파이를 나누는 게임이 아닌 파이를 키우는 데 주력하자.
이숙진 CBO: 파이를 나누지 말고, 파이 자체를 키우자. 너무 공감가는 말입니다. 사실 모두에게 좋은 환경은 서로에게 자극이 되고 적당한 긴장감을 주는 거라고 생각해요. 진단 시장만 해도 마찬가지구요. 특히 희귀질환은 같이 인식도 넓히고 활동해야 더 넓은 확대가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Q. 새로운 방식을 도입할 때 저항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요. 설득의 비결은 무엇이었나요?
지창덕 상무: 늘 비용과 책임 소재가 걸림돌이었죠. 시장을 이끄는 리딩 컴퍼니도 안 하는 방식을, 그것도 AI로 하겠다니 신뢰를 얻기 힘들었습니다.
저는 수많은 미팅에서 “우리가 하는 일의 가치를 다시 되뇌어봅시다“라는 한마디로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동시에 재무적 성과와 사업적 당위성을 명확히 제시했고, 제가 먼저 내부 리스크와 책임을 짊어지겠다고 나섰죠. 무엇보다 당시 문희석 대표님(GM)께서 스크리닝의 가치와 전략적 방향을 깊이 이해하고 든든하게 지원해주신 덕분에 끝까지 밀어붙일 수 있었습니다.
이숙진 CBO: 조직 내에서 새로운 제안에 힘을 실어주시는 것 만큼 좋은 동기 부여는 없는 것 같습니다. 믿어준 만큼 보답하고 싶은 마음도 들구요. 어느 새, 어쩌다 저도 상무님도 더 많은 사람들에게 그 믿음을 주어야 하는 자리에 놓여지는 경우가 많은데 받은 만큼 더 노력해야겠습니다.
Q. 실제 운영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지창덕 상무: 세 가지가 있었습니다.
- 3자 협력의 동반 성장 구조 설계: 제약사(신환 발굴), 스타트업(검사 건수 확보로 서비스 신뢰도 상승), 진단 회사(AI 기반 신규 고객 확보) 세 축이 ‘더 많은 환자 진단’이라는 하나의 북극성을 보게 만드는 일이었습니다.
- 내부 설득의 연속: 매 순간 산을 넘는 과정이었죠.
- 실무적 법률·표준 준수: 법률 요건과 업계 표준을 반영하며 숱한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오히려 지금의 안정적인 모델을 만든 초석이 됐습니다.
이숙진 CBO: 맞습니다. 이상적으로는 3자가 윈윈 할 수 있는 방안을 늘 도출하고 싶지만, 서로의 이해관계가 우선이 될 수 밖에 없고, 저희도 서로 나름 “위기의 순간”이 있기도 했잖아요 (웃음). 그때는 정말 치열하게 논쟁하고 협의했던 것 같습니다. 그 날 회의실 공기가 아직도 생생하네요.
Q. 사업이 안정적으로 궤도에 올랐다고 느낀 시점은 언제였나요?
지창덕 상무: 비즈니스 리드타임이 도래한 지 9개월쯤이었어요. 저희 가설대로 더 많은 환자가 더 빠르게 진단받고, 곧바로 치료로 이어지는 선순환이 눈앞에 펼쳐지기 시작했죠. 그 시점부터 운영과 성과 모두 제 궤도에 올랐습니다.
Q. 스크리닝으로 진단을 당긴 환자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케이스가 있다면요?
지창덕 상무: 질환인 건 확실하고 치료도 절실한데, 보험 규정이 요구하는 유전자 변이(Mutation)를 찾지 못해 치료를 못 받던 환자분이 계셨어요. AI 기반 검사로 ‘Likely Pathogenic(병인성 추정)’ 변이를 찾아내면서, 15년 넘게 치료의 문턱에서 기다리던 그분의 오랜 숙원을 풀어드렸을 때가 지금도 잊히지 않습니다.
이숙진 CBO: 네, 그게 저희가 느끼는 보람이기도 합니다. 기존에 해석하지 못했던 근거를 찾고, 저희만 아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 DB에 공유하고, 공유 함으로서 또 다시 근거가 되는 선순환이요. 그런 거 보면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추적한다“가 중요한 요인이 될 것 같습니다. 당장 그 환자만이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영향을 받을 수 있게 되니까요.
Q. 진단이 6개월, 1년 빨라진다는 건 현장에서 실제 어떤 의미를 갖나요?
지창덕 상무: 조기 진단과 치료로 합병증이 줄고 환자의 삶이 연장되는 건 당연하고요. 더 나아가 진료 관행과 인프라 자체가 근본적으로 개선되었다는 뜻입니다. 무엇보다 이 협업 모델의 성공으로 다른 희귀질환 영역에서도 제약사와 진단사가 손잡을 수 있는 문이 열렸다는 점, 그래서 더 많은 환우가 빠르게 진단받을 기회가 생겼다는 게 가장 큰 수확입니다.
(하편에서는 ‘약 도입과 급여화의 현실, 그리고 제약사와 진단사의 진짜 파트너십’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