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러 갑니다」 ② 놓치지 않으려면
파브리병 진단, 그리고 알수록 겸손해지는 일

1편에서 이준화 교수님은 “유전자 검사로 진단이 되어도 치료약이 개발된 경우는 5% 정도”라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치료가 있는 질환에서는 진단이 얼마나 결정적일까요. 2편은 그 5% 안에 드는 질환 — 파브리병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한국선천성대사질환협회가 지원하는 ‘LSD 진단 활성화 사업’을 통해 함께 마주한 사례들입니다.

최근 한 가계에서 5명의 파브리병 환자를 찾게 된 사례가 있었어요. X염색체 연관(X-linked) 질환이라 한 명이 진단되면 그 가계에서 연관된 환자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는 걸 체감할 수 있었던 사례였습니다. 물론 아직 임상적 확진이 아닌 상태인 분들도 있지만요. 특히 소아 환자에서 “이건 파브리일 수 있겠다”고 처음 의심하게 되는 신호가 있을까요? 소아과에서 놓치기 쉬운 지점이요.

신경·심장·신장 쪽 특성은 상대적으로 선천성 대사질환에 대한 인식이 많이 바뀌어서 유전자 검사나 진단이 꽤 익숙해졌어요. 오히려 놓치기 쉬운 건 안과와 피부과입니다. 파브리는 대사질환이지만 증상이 전방위로 나타나서 진단이 지연되곤 하거든요.

흥미롭게도 파브리 환자의 약 70%는 뚜렷한 안과적 특징을 보입니다. 각막 와상혼탁(cornea verticillata / vertex keratopathy)이 있는 환자라면 반드시 검사를 받아 보는 게 필요해요.
최근 우리 병원에서도 안과 선생님과 협진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이 증상은 시력 자체를 떨어뜨리지 않기 때문에 환자 스스로는 알아채지 못해요. 각막에 특이한 소용돌이 모양의 혼탁이 있거나 혈관이 유독 구불구불하다면 파브리를 의심해 볼 만합니다.
또 하나는 피부과예요. 혈관각화종(angiokeratoma)이 보이면 의심해야 합니다. 피부 혈관이 비정상적으로 늘어나면서 생기는 작고 붉거나 붉은 보랏빛 발진인데, 주로 ‘수영복 라인’이라고 부르는 배꼽 주변·엉덩이·사타구니에 생겨요. 무한증이나 발한 감소증이 동반되기도 합니다. 단순 혈관종은 나이가 들면서 생길 수 있지만, 청소년이나 젊은 성인인데 유독 배꼽·사타구니 주변에 검붉은 반점이 몰려 있고, 평소 땀이 잘 안 나고 더위를 잘 못 참거나, 손발이 타는 듯 찌릿하게 아프다면 파브리를 의심해 볼 수 있습니다. 사지 말단의 통증이 성장통이나 기능성 통증으로 오인되기 쉬운데, 그 통증이 ‘땀이 잘 안 나고 더위를 못 참는’ 자율신경 증상이나 혈관각화종 같은 피부 소견과 함께 나타나는지를 함께 보는 것이 감별에 도움이 됩니다.

파브리가 처음부터 의심되지 않았는데, 유전자 검사를 통해 진단에 이르는 경우도 있나요?

파브리처럼 증상이 전방위로 흩어져 나타나는 질환은 처음부터 표적검사로 좁히기가 어렵습니다. 엑솜은 모든 유전자를 한 번에 볼 수 있어서, 파브리가 ‘유력 후보’가 아니었더라도 진단의 그물을 넓게 칠 수 있다는 점이 결정적일 때가 있어요.

네, 저희도 LSD 진단지원 사업을 하며, 그런 사례를 자주 마주합니다. 파브리인 줄 모르고 다른 질환으로 진단받아 치료를 받고 계시다가, 우연한 기회에 검사를 통해 알게 되시는 경우들도 많구요. 아마 질환의 증상이 광범위하기도 하고, 또 사람마다 증상의 정도가 다르니 다른 질환과 혼동되거나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요. 그래서 진단이 되고서도 이미 약의 효과를 제대로 보기 어려운 환자들도 자주 마주했습니다. 소아기에 조기에 파브리를 진단하면 예후나 치료 방향이 실질적으로 어떻게 달라지나요?

그 점이 파브리 진단에서 시간이 중요한 이유예요. 파브리는 효소대체요법(ERT)이 있고, 변이에 따라서는 경구 샤페론 치료(미갈라스타트)도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표적 치료가 가능한’ 대사질환입니다.
문제는 신장·심장·뇌의 손상이 수십 년에 걸쳐 조용히, 대개 증상 없이 진행된다는 거예요. 일단 섬유화 같은 비가역적 손상이 자리 잡으면 되돌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핵심은 ‘돌이킬 수 없는 장기 손상이 생기기 전에’ 개입하는 겁니다.
소아기에 진단이 되면 바로 치료를 시작하지 않더라도 신장·심장·신경 상태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하면서 치료 시작 시점을 놓치지 않을 수 있어요. 실제로 소아기(특히 비가역 손상 이전)에 ERT를 시작한 남아에서 성인기 신장·심장 합병증이 줄어든다는 보고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진단이 늦어 이미 손상이 진행된 뒤 시작하면 그만큼 얻을 수 있는 이득이 줄고요.
또 하나, 앞서 한 가계에서 여러 명을 찾은 사례처럼 — X염색체 연관 열성 유전을 따르는 질환이라, 한 명이 진단되면 가족 내 아직 증상이 없는 보인자나 초기 환자를 미리 확인해 추적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개인의 치료 시점뿐 아니라 가족 전체의 조기 개입 기회를 여는 거예요. 그게 ‘진단이 곧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는’ 질환이라, 파브리에서는 조기 진단이 특히 결정적입니다.

특히 작년 초부터 시작된 신생아 선별검사에 파브리병이 포함되어 있으므로, 향후에는 조기 진단이 더 잘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마무리 – 의사로서 인생 선배로서

개인적인 궁금증인데요. 많은 진료과 중에 소아과를 선택하신 이유가 궁금합니다.

모든 진료과가 저마다의 보람이 있지만, 같은 진료라도 아이를 치료하고 살렸을 때 그 아이가 세상에서 펼쳐 갈 오랜 시간을 생각하면 가장 큰 보람을 느낍니다. 소아과를 하며 매 순간 그 보람을 느꼈어요. 이상적으로 들릴 수 있지만, 시간이 지나 돌아보면 가치를 느끼며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일을 한다는 건 상당한 행운이라고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도 있지만, 그래도 그럴 수 있다는 게 항상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직업인으로서 내가 하는 일이 정말 가치 있게 느껴지는 건 감사할 일이라는 게 너무 공감됩니다. 저 역시 지금까지 무언가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노력하며 지내왔는데, 궁극적으로 무엇을 위한 삶이었나 하는 고민이 많아지는 시기이기도 하거든요. 너무 빠르게 변해가는 세상에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생각도 많구요.

그쵸. 최근 『파우스트』를 다시 읽었는데, 예전엔 몰랐던 부분이 지금은 크게 와닿았어요. 파우스트는 철학·법학·의학·신학까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모든 학문을 섭렵한 최고의 석학이지만, 학문의 한계를 느끼고 우주의 근본 진리에는 이르기 어렵다는 걸 알고 탄식합니다.
결국 ‘우리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는 거죠. 내가 아는 것이 전부가 아님을 깨닫는 것, 그 부분이 정말 공감이 갔습니다. 모든 것을 안다는, 알 수 있다는 그 무게감에서 벗어나는 것이 곧 세상에 대한 겸손이더라고요. 정말 공부하고 알게 될수록 모르는 것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걸 인지하고 나니 새로운 것을 조금 더 가볍게 받아들이고, 배우는 일에 더 익숙해지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바쁜 시간 속에서도 저에게 함께 하는 파트너로서, 인생의 선배로서 좋은 이야기와 식사, 그리고 공간을 소개해 주시며 따스하게 맞이해 주셔서, 그날 하루는 위로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진심으로 마주하시는 선생님의 모습처럼, 저도 그리고 저희도 환자를 위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쓰리빌리언이 되겠다 다짐했던 시간이었습니다.
「만나러 갑니다」 ①편 「미운오리새끼에서 파트너로」에서, 5년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함께 읽어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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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okjin Lee
기술 및 시장 통합 전문가 | 글로벌 헬스케어 혁신 유전체 데이터 기반 의료 분야에서 15년 이상 경력을 쌓은 저는 좋은 기술을 시장 요구에 맞춰 영향력 있는 변화를 만들어내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전문 지식을 시장 눈높이에 맞춰 전달하고, 새로운 시장으로의 확장을 촉진하여 더 나은 삶을 살게 만들고자 합니다.




